우주 티끌에 불과한 우리 행성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생태계의 용매인 물이다. DNA, RNA, 단백질 등 모든 생명고분자들은 물 분자의 극성으로 작동한다. 물에서 유전자가 복제되고, 단백질이 만들어지며 세포가 분열한다. 지구 표면의 3/4을 푸르게 물들이는 물이지만, 사실 부피로는 0.15%에 불과한 희귀 자원이다. 광합성 생물은 지구를 비추는 태양 빛을 고분자 유기물로 전환한다. 나머지 생물은 이 생태계의 농부가 공급하는 유기물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리 주변에 흔한 생태계는 사실 한정된 에너지의 아주 작은 공간이다.
유한한 생명이 유전자를 보존하는 방법은 자기복제다. 다양한 생명은 유한한 생태계를 자기 유전자로 채우려고 복제 경쟁을 한다. 경쟁은 진화를 유도한다. 복제에서 발생한 돌연변이는 유전적 다양성을 만든다. 경쟁에 유리한 유전자는 보존되고 불리하면 도태된다. 그리고 보존된 유전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다양성이 시도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진화가 진행된다. 생명의 웅덩이로 불리는 원시 생태계에 자기복제 고분자인 유전자가 등장한 것은 약 35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다시 긴 시간이 흘러 생명의 최소 단위인 세포가 등장한다.

인간(Homo sapiens)은 인간(Homo) 속의 유일한 종(Species)으로 인류의 유전적 차이는 0.1%에 불과하다. 이는 천 명 정도의 집단으로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바이러스가 이기적 유전자의 정수라면, 문명은 이타적 유전자의 정수다. 인류는 문명의 힘으로 생태계의 단일 지배종이 됐다. 다른 동물은 날카로운 발톱을 위해 오랜 진화가 필요했지만, 문명 인류는 날카로운 창을 만드는 방법을 금방 배웠다. 개체 사이의 소통과 협력이 탄생시킨 문명은 생태계 압력을 극복하게 해줬다. 대신 인류는 생물학적 진화를 멈춘다. 지배종에게 유전자 다양성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 지배종은 멸종을 암시하는 단어다.

수없이 다양한 이기적인 유전자들은 지배종을 끝없이 공격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아무리 문명이 발전했어도 인간도 생물인 이상, 이 유전자 전쟁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류의 유전적 단일성은 바이러스에게 아주 매력적인 조건이다. 사람 간 전파가 한 번만 성공하면 바로 70억 숙주 개체가 확보되는 블루오션이다. 따라서 생태계에서 인간으로 신종 바이러스가 계속 건너오는 것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지배종은 다양성을 무기로 공격하는 바이러스에 시달린다. 인간으로 건너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집단 면역이 전무한 상태에서 폭발적으로 전파됐다.

천문학적으로 복제되며 발생하는 돌연변이로 다양한 변이가 만들어지고, 그중 가장 잘 전파되는 것이 우세종이 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코로나19 팬데믹을 왜 유전자 전쟁이라 했는지 이해될 것이다.

문명의 정수인 과학은 이기적 유전자와 맞설 수 있는 백신을 제공했다. 애매한 선택 압력은 저항성 변이의 등장 확률만 올리기 때문에, 전 세계가 비슷한 속도로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국가에서 부스터 샷을 고민하는 동안 대부분 국가에서는 일차 접종도 못하고 있다. 이런 백신 국가주의가 만든 사각지대에서 등장한 것이 오미크론이다. 아프리카에는 우분투(ubuntu)라는 다른 언어에는 없는 특별한 단어가 있다. “나는 당신으로 존재합니다”라는 뜻이다. 아마 이는, 12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에게는 중요한 단어였을 것이다.

엄혹한 생태계의 도태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서로에게 외치던 단어가, 문명이 발전하면서 점차 의미를 잃고 사라졌을 것이다. 세계화의 균열을 뚫고 아프리카에서 등장한 오미크론은 우분투의 의미를 현대 문명에게 일깨워주는 반향이 아닐까?